사업의 취지와 목적 (미술관 속 철학 이야기)
미술에 대한 인식의 재고(再考)와 인간의 지혜로운 삶을 위한 생각하는 미술의 모색 : 미술이 독립된 공간에서 홀로 외롭게 자기와 싸우는 창작 활동이다 보니 이런 모습이 세인들의 눈에는 마치 미술이 현실과 사회에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영역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계에서 흘러나오는 ‘예술의 자율성’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외침이 일반인들에게 미술을 그들만의 리그(league)로 간주하는 습성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시선은 오해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어느 정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삶의 현장이 제대로 보이고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되는 바가 없지 않음에도 오히려 이런 자세가 오해를 야기하는 쪽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예술도 시대의 산물이며,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상존해 왔으며, 실제 현실을 미술 작품으로 표현했던 경우가 그리 낯설지 않다. 더욱이 예술가도 인간인 이상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주어진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사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면, 현실과 사회에 초연한 이른바 ‘관조적인 예술’이 아닌 ‘인간의 삶을 위한 예술’이 적극 추구될 필요가 있다. 예술의 독자성과 목적적인 가치도 실로 이와 같은 인간의 삶을 위한 예술의 범주 안에서 추구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과 사회에서 포착된 다양한 장면들이 창작의 모티브로 예술가 앞에 놓인다. 그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현상과 사실에 그치지 않고, 현상의 숨겨진 구조나 존재의 본질 등을 밝혀내려는 데까지 치닿는다. 이렇게 볼 때 예술은 인식론적 탐구의 한 표현이 되며, 그런 점에서 철학과 동반자로서 교감하고 소통하는 상생(相生)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단서로 앞서 언급된 ‘인간의 삶을 위한 예술’에서 한 두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지혜로운 삶을 위한 생각하는 미술’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수많은 문제들과 끊임없이 만나는 과정인 인간의 삶 속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문제들에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큰 의지가 되는 것으로서 철학, 정확히 말해서 철학 공부를 통해서 길러진 넓고 깊고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유의 힘만한 것도 없다고 굳게 믿는다. [미술관 속 철학 이야기]는 어원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철학(philosophy)을 활용하는 창작 실험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없이 지혜롭게 살 방법은 없다. 특히 자신의 언행뿐만 아니라 인간사(人間事) 전반에 걸쳐 포괄적으로 꾸준하게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보려는 태도야말로 지혜로운 삶에 이르는 정확한 길의 구실을 할 것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반성(反省)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결국 그가 독배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도 근본적으로는 바로 이와 같은 반성적인 삶을 끝까지 고수하였 기 때문이다. [미술관 속 철학 이야기]는 또한 ‘반성적 사유’의 학문인 철학을 활용하는 창작 실험이기도 한 것이다.
감성 충전 외 지성 키움의 기회 제공을 통한 향유자 유익성(有益性)의 극대화 도모 : [미술관 속 철학 이야기]는 정통 철학을 활용하여 일반 대중, 특히 청소년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및 만족도를 제고(提高)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과거에 비해 미술의 문턱이 많이 낮추어졌다고는 하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미술 전시는 주로 미술 애호가나 미술 전문가를 겨냥하여 기획되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 미술관에서 일반인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맞춤형 전시가 개최되고는 있으나 대중친화적인 전시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지는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뭔가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따라서 일반 대중에게 유익하면서도 동시에 존재감이 부족하지 않은 전시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계획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모두가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것인 만큼 지극히 의 미있는 일이 될 것이며, 그래서 한번 용기를 내 볼만한 일인 것이다. 철학이 결코 가볍지 않은 학문임에는 분명하나 문제는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과연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는가였다. 철학은 위대한 지성이 평생을 통해서 일구어 낸 기록들을 모아 놓은 것이므로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고, 못하나 박는 방법조차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는 등 일상적인 현실 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인 해결의 열쇄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의 유익함에 대한 이런 의문은 우리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그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현대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시대이다. 한 가지 문제가 또 따른 문제를 낳고, 그것은 또 다시 제 3의 문제를 야기하는 등 문제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계속 제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진 오늘날 사람들은 당면한 현실 문제에 대하여 일상적인 수준의 적당한 해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현재의 복잡다난(複雜多難)한 문제들에 대한 지극히 높은 수준의 해법과 답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철학과 철학을 통해서 길러진 넓은 시야, 깊은 통찰력, 날카로운 사고력 등 철학적인 무기들이 전쟁과 같은 문제 해결의 마당에서 승리의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지는 못할지 모르나 적어도 승전(勝戰)으로 통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어느 정도 인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철학의 유익함은 철학이 갖는 학문적 특성을 감안할 때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될 필요가 있다. 요즈음 철학을 찾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이유도 바로 앞서 언급한 그 정도의 어찌 보면 놓칠 수 없는 유익함을 사람들이 철학에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고 해도 철학은 어느 정도의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신통력을 갖는 바, 특히 넓고 깊고 바르게 생각하는 태도로서의 ‘철학함’은 청소년 시기부터 길러지고 그것이 능력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 경쟁의 교육 환경 속에서 미술관을 찾는 것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 우리 청소년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감성 충전의 기회와 함께 교과 공부에도 도움이 되도록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성은 결과적으로 청소년의 철학적 사유의 능력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미술관 속 철학 이야기]는 청소년에게 특별히 유익한 전시가 될 것이다.
표현의 능력과 더불어 출중한 사유의 역량을 갖춘 작가의 육성 기반 구축 : 미술이 철학과 손잡는 것은 분명 장점을 갖는다. 예술은 존재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밝혀내려는 인식론적 노력의 한 표현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에 따르면, 예술의 본질은 ⌜존재자의 진리를 작품 속에서 완성시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미술은 철학과 기본적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반자 관계인 셈이다. 하지 만 미술과 철학은 서로 항상 마주 보고 있는 사이가 아닌 게 사실이다. 진리 탐구의 방법에 있어서 미술이 감성과 직관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적인 표현의 작업이라면, 철학은 이성 기반의 분석과 사변의 방법을 구사하는 반성적 사고의 학문이다. 이렇게 볼 때 철학과 미술은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통 지반 위에서의 이런 차이는 오히려 서로 상보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는 바, 미술과 철학의 결합은 실보다 득이 많다고 믿으며, 미술의 입장에서 보면 철학이 갖는 반성적 사유의 특징이 창조적 표현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이 작가의 내적 세계의 표출이라면, 특히 신진 작가들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등의 형성과 고양에 넓고 깊은 사고를 지향하는 철학이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기술이나 기교는 좋으나 내용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어찌 그 결과가 공허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우리를 진정 매료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넘치는 표현의 역량과 더불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넓은 안목의 깊은 통찰을 갖추고 있을 때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인정받는 경쟁력있는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저 넓고 깊은 사유의 능력은 몇 차례의 훈련으로 운좋게 생기는 결과가 아님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넘치는 열정과 끈질긴 집념, 그리고 부단한 노력이 통합적으로 충분히 투여되고서야 비로소 희망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며, 이 문을 비집고 들어가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렇게 말하면 저 능력의 소지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 버릴 것 같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목적지로 향하는 노정(路程)이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은 아닐지 몰라도 결코 쉬운 걸음을 허락하는 길이 아니며, 또한 다부진 마음가짐으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다가서야 하는 과정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넓고 깊게 생각해 보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며, 그리고 그런 태도를 습관화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철학적 사유의 태도를 몸에 익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은 선배 철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넓고 깊게 생각했는지, 그 철학적 사유의 흔적들, 즉 철학적 문제와 그 문제의 해결로 접근하는 사유의 사례들을 통해서 넓고 깊은 생각의 모범을 배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철학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런 길을 더듬어 보겠지만, 창작에 이르는 실전 과정을 통해서도 그들의 기록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전을 통한 훈련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으며, 이와같은 훈련이 하나, 둘 거듭 쌓이면 어느새 넓고 깊게 생각할 줄 아는 힘을 지닌 나를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날이 그리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